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한 배경적 이해 및 감상

그러나 도시국가라는 규모의 한계 때문에, 막 중세봉건시대의 지방분권적인 통치체제를 마감하고 근대적 중앙집권적 국가로 들어서려고 했던 주변의 강대국가들에게 힘에서 밀리게 된다. 군사적 측면에서도 부족한 인구수 때문에 대다수의 병력을 용병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 물론 당시 중세적 전쟁의 관습에 의하면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가 실시한 최초의 징집병제는 이전에는 다수의 병력이 용병으로 구성되고 전비가 대부분 용병집단의 대가로 지불되기는 했으나, 용병으로 충당되는 병력과 수백만의 신민에서 충당되는 잠재적인 병력량의 차이는 절대적인 우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 소규모 영토에서 기인하는 배후지 부족으로 인하여 인구수 폭발적 증가 및 적절한 사회기반시설의 증설이 어려웠던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인구수의 차이가 전근대적 산업혁명 이전의 사회에서는 국가총생산량을 좌우했으므로 시간이 흐를수록 국가 경쟁력에서 차이가 벌어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여러 도시국가들은 반도 내에서의 패권을 꿈꾸었으나, 서로간의 전력격차가 크지 않았던 이상 절대적인 압도는 불가능 했다. 이는 외세의 반도 내로의 유입을 야기했으며, 그 이후 스페인과 프랑스가 강성하자 이탈리아반도가 전쟁터로 돌변했다는 사실은 군소국가의 한계성을 절실히 보여주는 역사적 배경을 보여주는 것이다.
피렌체공화국에서 공화국은 근대적인 의미의 국민공화국이 아니라, 로마시대의 제정시대 이전의 정치체제인 과두정부적 성향을 띈 것을 말한다. 대표자로서의 수장이 존재하지만, 이는 군림하는 자라기 보다는 고대 로마시대의 옥타비아누스가 표방했던 것과 같이 Principle –시민 중 최고대표자-라는 의미가 더 강하며, 이는 당시 유럽에서 강대국의 일괄적 특징이었던 넓은 영토와 강력한 절대권력을 기반으로 한 중앙집권적통치 체제 중 어느 것도 도시국가들에게 해당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정치적 후진성에 의한 입지약화와 주변 강대국의 간섭에 의해 반도내의 도시국가들의 이합집산이 벌어지고 있던 혼란기에 태어난 마키아벨리가 원했던 이상적인 이탈리아의 상황이 그의 저서 『군주론』에 들어가 있는 것 이다.
르네상스라는 복고주의적 정신개혁운동은 당시 유럽을 지배하고 있었던 신정사회의 믿음 자체를 흔드는 격변의 시발점이었다. 그리스-로마시대의 신에 의해 통제를 받는 인간상이 아닌 인간본연의 이성을 이용하여 주체적인 삶을 사는 존재로의 회귀를 염원하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배경 속에서 1400년 후반에 출생한 마키아벨리는 근대적인 인간상에 대한 단서를 가지게 된다. 군주론의 내용은 강력한 군주에 대한 갈망과 목적과 수단을 가리지 말라는 ‘마키아벨리즘’으로 더 유명 하지만, 위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 본다면 그의 강력한 전제왕국의 성립에 대한 갈망은 단순한 군주에 대한 칭송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첫째, 그는 철저하게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규명했으며, 이는 중세적인 신학사상에서 한 없이 이타적이어야 한다는 성선설의 관념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이기적이므로 주변의 간섭이 없다면 자신의 이익을 관철 시키기 위해 자신의 의지대로만 행동을 하므로, 사회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없는 것이다.
둘째, 당시 근대적 국가의 태동기에 사회의 변화를 포착하여 다음시대의 정치질서의 주체가 국가가 될 것임을 주목했으며, 이를 통하여 근대적인 새로운 관점을 확립했다.
이러한 고찰을 통하여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 국가 체제의 정의 및 비교, 영토 획득 방법, 군대의 비교 등의 세세한 내용부터 시작하여, 기존의 숭상되었던 덕목인 ‘용기’나 ‘덕’등이 아닌 권모술수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를 하는 등 여러 측면에서 기존의 군주에 대한 정의를 달리하는, 당대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상당히 실용적이며 파격적인 내용을 포함시킨다. 이러한 내용으로부터 마키아벨리는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마키아벨리즘을 탄생시키게 되고 실질적으로 냉철한 현실판단을 통해 최선의 선택을 한 후, 도덕적 문제는 나중에 고려하라는 주장을 표출한다.
민주주의적 정치 체제가 확립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많은 이론적 토대가 마련된 현재의 관점에서 본다면 상당히 무리가 있으며, 독재정치와 개발지상주의적 현대사를 경험한 우리의 입장에서는 경계를 금치 못할 발언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이 강한 자를 원했으며 평화의 시기와는 달리 혼란이 만연한 곳에서는 절대적인 영웅을 통한 혼돈의 종결을 원하기 마련이다. 이는 고대 중국사의 수많은 제자백가 사상 중에서 전국 시대의 종말을 이끌어낸 진나라 법가의 성악설에 기인한 억압적인 백성 통제책과, 이후 안정기에 어울리는 유가사상을 바탕으로 한 한나라의 등장을 보았을 때 역사적으로 일반적인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다.
군주론은 권모술수라는 키워드를 통하여 기존의 이상적인 군주의 덕목을 갈아 엎었으며, 이기적인 인간군상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단순한 선행이나 베품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살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위대한 사람들에게도 새로이 은전을 베풀면 지난날에 피해 입은 것을 잊게 된다고 믿는 것은 기만입니다.' 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인간을 단순하게 선하다던가, 물질적인 수여 만으로 민심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는 중세적 관념이 허구임을 폭로한다.
현실 세계는 배신과 암살이 난무하면서 이상적인 태도인 군주의 선함이 모든 문제를 해결 가능하다는 허구적 믿음을 파괴한 것은 기존 중세적 군주 도덕론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그의 절대왕정을 통한 중앙집권적 거대 국가에 대한 열망은 정치사회적으로 큰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이 때문에 그의 저서는 바티칸 교황청으로부터 금서지정을 받았다.
마키아벨리가 이 책을 저술한지 500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도 그의 정치 및 사회에 대한 고찰은 탁월한 면을 발휘하고 있다. 그의 저술 내용은 중세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지나치게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반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지만, 인간이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지우고,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인 적자생존의 신자유주의에 의한 무한경쟁시대에 살고 있는 현실을 대입시켜본다면 공감하기 충분한 내용이다.
정치와 사회는 인간의 공동체적 행위와 총체를 의미한다. 즉, 그의 군주에 대한 치열한 고찰은 현실적인 인간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었으며, 이를 통하여 강력한 통일 이탈리아를 염원한 그의 의지가 잘 드러나는 저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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